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 (문단 편집) == 진행 == 1976년 5월 신민당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해 [[전당대회]]가 열렸다. 김영삼은 연임을 통해 당내 불신임 여론을 불식시키고 자신의 단일지도체제를 공고히 하려 했다. 이에 이철승은 최고위원제를 도입해서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비주류를 규합했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직접 실무를 맡아서 '''참여 하의 개혁'''이라는 온건 노선을 내세운 [[이철승]] 의원을 지원했다. 신민당 내에서 세력이 밀리던 이철승은 독재정권의 비호를 받게 되자 '''[[정치깡패]]들을 동원해서 판을 뒤엎을 계획을 세웠다.'''[* 원래 이철승은 해방 직후에 정치깡패로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본인은 우익 학생운동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그가 했던 활동이란 게 주먹패들을 데리고 좌익계 인사들을 테러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사실 이철승만 이런 것은 아니고 해방 직후의 극심한 혼란기에 좌우를 막론하고 청년운동, 학생운동이란 게 나중에 가면 전부 이런 정치깡패, 테러 활동으로 변질된 게 사실이다. [[야인시대]]로 유명한 [[김두한]]도 [[대한청년단]]에 소속되어 [[백색테러]]를 일삼고 다니면서 정치깡패로 성장하고 국회의원까지 되었다. 드라마에서는 미화가 심하게 되어 김두한을 마치 독립운동가이자 애국 청년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김두한이나 이철승 같은 주먹패들은 지금 와서 보면 그냥 정부의 개처럼 일하는 정치깡패였다.] 그리고 자신의 측근들을 시켜서 당시 서울에서 한참 뜨고 있던 26세의 '''[[조직폭력배]] [[김태촌]]을 포섭'''했다. 당시 고향에서 자신의 조직원들을 데리고 상경했던 김태촌은 서울에 먼저 진출해 있던 [[조양은]]과 무자비한 세력싸움을 벌이면서 조폭 세계에서 한참 명성을 얻고 있었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이철승 의원에게 ‘사람만 죽이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아무런 뒤탈이 없도록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전해들은 김태촌은 고향 광주에서 자신의 조직원들과 고등학교 불량학생들까지 300여명을 전당대회 5일 전에 서울로 급하게 불러올렸다. 이들은 서울 종로 일대의 여관에 분산 투숙했으며 이들이 먹고 자고 노는 모든 비용은 전부 이철승 의원이 대주었다. 그리고 김태촌은 이철승의 측근으로부터 다음의 세 가지를 지시받았다. * [[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당의 직인을 탈취할 것.]] * 직인 탈취에 실패하면 대의원 명부를 불태워서 [[재보궐선거|대의원을 다시 선출하게 만들 것.]] * 당직자들을 인질로 잡고 5월 25일까지 농성해서 [[깽판|전당대회를 무산시킬 것.]] 당시 이철승은 명백하게 당 내 세력구도에서 김영삼에게 밀리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당 대의원들이 모두 투표를 하면 패배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깡패들을 동원해서 김영삼계 대의원들을 못 들어오게 막고 자기 지지자들만 모아서 전당대회를 열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면 당연히 김영삼도 따로 전당대회를 열 텐데 이럴 경우 선관위와 법원은 당의 직인을 가진 쪽을 합법 전당대회로 인정해 주게 된다.[* 당의 직인이 가지는 위상은 2016년 [[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를 생각해 보면 된다. 흔히들 '''김무성 옥새런, [[육룡이 나르샤|옥새 들고 나르샤]]'''라고 부르던 사건. 이것도 새누리당에서 (비박계) 김무성 당대표와 (친박계) 공천관리위원회가 공천 문제로 대립하던 와중에 직인이 핫아이템으로 떠오른 사건이다.] 따라서 이철승은 1단계로 정치깡패들을 동원해서 당의 직인부터 탈취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전당대회를 사흘 앞둔 5월 22일 김태촌은 부하 수백명을 흉기로 무장시켜서 김영삼과 당직자들이 머물고 있는 [[종로구]] 관훈동 '''신민당사를 대낮에 습격했다.''' 무슨 홍콩 느와르 영화도 아니고 각목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조폭 수백명이 대낮에 국회의원들이 머무는 야당 사무실에 테러를 가하는 아스트랄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당사를 습격한 깡패들에 경악한 친김영삼 계열의 국회의원들은 김영삼과 함께 총재실로 대피해 사무실 집기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버텼다. 김태촌은 김영삼에게 죽기 싫으면 항복하라고 을러댔지만 악에 받칠 대로 받친 김영삼은 항복하지 않고 버텼다. 당시 김영삼은 '''"깡패놈들에게 맞아 죽어? 내 기어이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철승 의원을 매장하고야 말겠다."'''고 외치면서 저항했다고 한다.[* 김영삼은 [[문민정부|대통령 재임기]]의 화끈한 행적들로도 유명하지만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에도 한 성깔 하고 거침없는 행보를 많이 보여주었다.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차에 산성액을 맞는 테러]]를 당하고도 [[박정희 정부]]를 비판했고 [[김영삼 단식 농성 사건|목숨까지 건 단식 농성]]을 하면서 [[전두환 정부]]에 맞섰다.] 실제로 김태촌의 증언에 따르면 폭력배들이 [[도끼]]로 문을 부수고 난입했으나 김영삼은 끝까지 버텼고 김태촌이 흉기를 들고 위협하려 하자 주변의 친김영삼계 의원들이 억지로 김영삼을 끌고 뒷문으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이에 적절한 착지를 못한 김영삼은 결국 다리를 다쳐 비서의 등에 업힌 채로 병원에 실려갔다. 김태촌은 흉기로 위협해서 직인과 대의명부의 행방을 찾거나 김영삼 총재를 납치하려 했는데 김영삼이 오히려 역으로 드세게 나오며 끝까지 버티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 오히려 뛰어내려서 절뚝거리는 김영삼을 보며 안심했다고 한다. 김태촌이 이끄는 조폭 수백여 명은 결국 신민당사를 점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당사를 뒤졌지만 직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대신 대의원 명단을 포함해서 서류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당사에 남아 있던 국회의원과 당직자들을 두손 들고 무릎을 꿇게 하는 등 인질로 잡았고 5월 25일까지 농성하기 위해서 술과 담배, 음식, 음료수들을 반입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집기들을 모두 부숴서 당사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준비도 철저했다. 그리고 '''경찰은 이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김영삼계 당직자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조폭들이 당사를 완전 점거한 뒤에야 늦장 출동했고 그 마저도 '당내문제이니 경찰은 개입하지 말라'는 이철승계 당직자의 이야기만 듣고 곧바로 철수해 버렸다. 한편 이런 상황은 방송을 통해서 전국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다. 그리고 5월 22일 밤늦게 김태촌과 조폭 300여명은 이철승의 지시로 경찰들의 호위 하에 안전하게 철수해서 숙소인 여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흘 뒤인 5월 25일 전당대회에서는 다시 이철승이 동원한 서방파(김태촌) 조폭들이 전당대회장이었던 [[세종문화회관|서울 시민회관]]에 난입해서 또한번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들은 김영삼 측 대의원들을 전당대회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막았고 전당대회에서는 당연히 이철승 의원이 대표로 당선되었다. 사실 이때는 이철승계 정치깡패들의 습격을 예상한 김영삼계 주류 쪽에서도 조폭을 동원해서 미리 대회장을 봉쇄하려고 했지만 전당대회장 경비 명목 하에 출동한 경찰의 방해로 실패했다. 주류쪽이 조폭을 동원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대회장에서 이들을 모두 강제로 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철승이 동원한 서방파 조폭들은 신민당 청년당원들이라면서 경찰의 호위 속에 대회장에 입장했다.[* 당시 신민당 청년국장이 이철승계 당직자로 서방파 조폭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주류쪽에서 대회장 진입을 시도하자 미리 준비한 각목으로 두들겨 패서 모두 쫓아냈다. 당연히 경찰은 당내 문제라면서 외면했고 방송은 조폭들의 난투극으로 엉망이 된 전당대회를 전국에 실시간 중계했다. 이러자 전당대회장에서 밀려난 김영삼계 주류 대의원들은 신민당사에서 따로 전당대회를 개최했고 김영삼이 총재에 당선되었다. 계파에 따라 따로 전당대회를 치르고 두 명의 총재가 나온 상황이 되면서 신민당은 분당 위기에 처했다. 결국 분당을 막기 위해 양자를 중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에 주류측이 비주류측의 최고위원제 도입에 찬성하고 이전의 총재 선거는 무효로 하며 [[이충환]]을 총재 대행으로 하여 9월 15일 통합 전당대회를 치르는 데 양측이 합의했다. 그리고 통합 전당대회에서는 1차 투표에서 김영삼이 45%를 득표하며 1위를 차지했으나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2차 투표로 넘어갔고 2차 투표를 앞두고 이철승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에서 사퇴한 [[정일형]] 때문에 역전당하며 결국 이철승이 총재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